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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3) 고아원 시절의 추억 ‘강냉이죽·구더기 김치…

김명순 | 2015.07.01 10:25 | 조회 3584

[역경의 열매] 김남주 (3) 고아원 시절의 추억 ‘강냉이죽·구더기 김치…’

창 밖을 보면 엄마 보고 싶어 눈물만… 열악한 환경에 이질 걸려 죽을 고비도


입력 2015-07-01 00:50

[역경의 열매] 김남주 (3) 고아원 시절의 추억 ‘강냉이죽·구더기 김치…’ 기사의 사진                

김남주 총장이 어린시절 10여년 동안 생활했던 고아원의 옛 건물 모습.

    

                                                                                                  
                     고아원생은 전체가 120명 정도였다. 선후배 관계는 옛날 군대의 계급처럼 엄했다. 가끔 어린 핏덩이를 이불에 싸서 고아원 앞에 두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벽 5시면 종소리가 울려 일제히 기상을 했다. 옛날 건물이라 겨울이면 왕겨를 태우는 풍로로 온돌을 덥혔는데 새벽이면 식어버려 추위에 떨었다. 이불이라곤 6명에 미군 담요 1장씩 나눠준 게 전부였다. 처음엔 나란히 덮고 누워도 한밤중에 누가 잡아당겨 가거나 형들이 둘둘 감아버리면 그나마도 덮지 못했다. 기상하면 여기저기서 밤새 오줌을 싸버린 아이들로 인해 지린내가 났고 그 아이들은 실컷 두들겨 맞아야 했다.

기상 후 모포 정리를 하고 강당에 모여 원장님이나 사무장님의 인도로 새벽예배를 드렸다. 식사를 준비하는 보모들과 환자들을 제외한 모든 원생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대부분 졸았고 형식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성경과 찬송, 기도를 익히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줄줄 외우게 됐다. 예배가 끝나면 각 구역별로 마당 화장실 우물 화단 마루 강당 그리고 식당을 청소했다. 

아이들은 손등이 갈라져 피가 나거나 머리에 기계독이 들고 부스럼이 생겨 진물이 나곤 했다. 옷 속에 이들이 우글거려 양 손톱으로 죽이면 피가 손톱 사이에 맺혔다. 그 속에 서캐가 깔려 있어 이빨로 씹어대는 게 일상이었다. 감기로 흐르는 콧물을 연신 닦아내 옷소매가 얼음처럼 단단해져 버린 광경도 눈에 선하다.

고아원생 가운데 유아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초·중·고교에 다니고 있었다. 초등학교는 무료였고 중·고교는 조금씩 학비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다닌 강진 중앙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약 3000명이라고 했다. 학교에 갈 때는 책보를 등에 메고 두 줄로 열을 지어 약 2㎞를 걸어 다녔다. 그럴 때면 고아원생이라고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공부시간에 창밖을 보면 엄마가 보고 싶어 자꾸만 눈물이 났다. 쉬는 시간에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학생들 사이로 가서 고무줄을 끊고 약을 올리는 일로 재미를 삼았다. 교과서는 고아원 선배들에게 물려받아 사용했는데 철 지난 달력 같은 것으로 표지를 씌워서 다시 후배들에게 물려줬다.

나는 4학년이 됐는데도 키가 크지 않고 체격이 아주 작았다. 하루는 입맛이 없더니 자꾸만 설사를 했다. 설사가 그치자 곱똥이 나오더니 혈변까지 나왔다. 당시 날마다 먹던 강냉이 죽과 간장, 김치에는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배가 고프니 썩은 내가 나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열악한 위생 환경에 살다 보니 이질에 걸린 것이었다. 밥은 말할 것도 없고 물도 넘어가지 않았다.  

한 달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살은 점점 빠졌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비슷한 증상의 아이들 몇몇과 함께 작은 방에 격리됐다. 아무런 힘이 없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질, 탈수,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채 모든 것이 무너져 갔다. 옆의 아이들은 한 명씩 숨을 거둬 공동묘지로 갔다. 내 차례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부르짖었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러다 숨이 멈추면 가마니로 만든 들것에 실려 3㎞ 떨어진 공동묘지에 묻힐 것이었다.  

보모 한 분이 사무장님께 옥수숫대 삶은 물을 한 번 먹여 보자고 했다. 당시 일부 주택은 옥수숫대를 엮어서 울타리로 해 놓았는데, 이걸 뜯어다가 씻어 뜨거운 물에 넣고 우려냈다. 맛은 요즘 녹차와 비슷했다. 몇 번이나 넘기지 못하고 토했지만 입을 벌려 잡고 숟가락으로 억지로 떠먹였다. ‘어차피 죽는데…’ 하면서.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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