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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남주 (11) 선교사들 軍 방문에 자극… 영어책 닳도록 ‘열공’

김명순 | 2015.07.13 07:40 | 조회 3332

[역경의 열매] 김남주 (11) 선교사들 軍 방문에 자극… 영어책 닳도록 ‘열공’

“우리 전도사님” 대대장 덕에 영창행 면해… 전역 후 레드먼 선교사와 부산서 교회 개척

입력 2015-07-13 00:48  
                                 
                
[역경의 열매] 김남주 (11) 선교사들 軍 방문에 자극… 영어책 닳도록 ‘열공’ 기사의 사진                
김남주 총장이 1974년 부산 산상교회 전도사 시절에 보던 성경(왼쪽)과 영어사전. 책장이 닳고 닳았다.
                                                 
                                
                                
                     나는 신앙대대에서 구령상담과 주일설교를 하며 초소 방문, 격려, 사고병 관리, 사회인사 접촉 등을 했다. 참모회의에도 참석했는데 대대장은 장교인 참모들에게는 반말을 하면서도 병사인 내겐 언제나 경어를 사용했다. 장교들도 힘들어하고 나는 나대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 후에는 장교들도 모두 내게 ‘전도사님’ 하면서 경어를 썼다.  

하루는 부대 밖 교회에 다녀오는데 차량 몇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지나갔다. ‘아차’ 하는 순간, 맨 뒤에 가던 헌병대 차가 멈춰서더니 “너, 이 새끼” 하더니 내 이름표를 떼 갔다. 그날따라 경례도 못한 데다 복장도 위아래가 달랐다. ‘아이고 하나님!’ 기도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대에 도착하니 사단 헌병대에서 김남주를 사단 영창으로 보내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대대장이 ‘우리 전도사님은 영창에 못 보낸다’며 맞섰다. 헌병 참모가 직접 부대로 찾아왔지만 대대장은 “우리 전도사님 잡아가려면 날 영창 보내시오” 하며 더 세게 나갔다. 그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지, 놀랍고도 고마웠다. 총으로 동료들을 쏴죽이고 자살하려 했던 병사를 설득하는 등 사고 병들을 잘 관리해온 것을 알기에 날 보호해줬던 것이다. 덕분에 영창 행은 피했다.

신앙대대에서 군목회를 하고 있을 때 라스터 선교사와 워커 선교사 부부, 이제 막 김포공항에 도착한 레드먼 선교사 부부로부터 우리 부대를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한국군 전방부대가 어떤 곳인지 살펴보고 내가 맡고 있는 군인교회에도 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어를 잘 못했던 나는 난감하기만 했다. 중고생 때 공부는 하지 않고 싸움만 하고 다녔던 게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세 부부가 부대를 방문했을 때 대대장실에서 인사를 나눴는데 서울대 출신의 형제가 통역을 했다.  

나는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혀를 만드신 하나님, 두뇌를 만드신 하나님, 바벨탑에서 언어별로 흩어버리신 하나님, 제 눈과 귀와 혀가 열리고 머리도 좀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중1 영어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후 전역할 때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보면서 영어를 공부했다.  

34개월 10일간의 국방의무를 마치고 1973년 12월 27일 전역했다. 시골 흙담집에 3년간 보관했던 깡말라버린 구두를 찾아 닦았다. 구두끈 한쪽은 쥐가 갉아먹어 짧게 맸다. 레드먼 선교사가 같이 부산에 가서 일하자고 해 기도한 후 승낙했다. 레드먼 선교사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불광동 성서침례교회(김우생 목사)에서 전도사로 사역했다. 레드먼 선교사가 한 달 사례비로 1만5000원을 줘서 중고품 가게에 갔다. 9000원짜리 야외용 소형 전축과 LP판으로 된 3000원짜리 ‘100만인의 회화’를 샀는데, 십일조까지 내고 나니 1500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했다. 반복해서 들으니 조금씩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레드먼 선교사가 기초 한국어 공부를 마친 뒤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거제2동의 상가 2층 30평을 보증금 10만원에 월세 3만5000원을 내기로 하고 빌렸다. 1974년 8월 10일 산상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척을 했다.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영어실력은 그리 빨리 늘지 않았다. 레드먼 선교사가 통역을 데려왔는데 미군부대 주변에 살아서인지 영어가 유창해 기가 죽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며 골목골목 전도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몇 달 뒤 추석 명절에 고향에 갔던 통역이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없었다. 당황했다. 당장 주일설교 통역을 할 사람이 없었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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