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대외홍보자료

[역경의 열매] 김남주 (13) 믿음의 아내와 중고 TV 팔아 ‘복음 리어카’ 제작

김명순 | 2015.07.17 10:05 | 조회 3867

[역경의 열매] 김남주 (13) 믿음의 아내와 중고 TV 팔아 ‘복음 리어카’ 제작

찬송 테이프 틀고 부산 골목길 누벼… 공터·야외서 주일학교 ‘아이들 북적’

입력 2015-07-15 00:41 수정 2015-07-15 18:30


                                 
                
[역경의 열매] 김남주 (13) 믿음의 아내와 중고 TV 팔아 ‘복음 리어카’ 제작 기사의 사진                
김남주 총장 부부가 부산 산상교회 전도사 시절 제작한 ‘복음 리어카’.
                                                 
                                
                                
                     나와 아내는 중고 흑백TV를 팔아 ‘복음 리어카’를 제작했다. 리어카에 파이프로 사각형 지지대를 세우고 그 위에는 스피커를, 뒷면에는 알루미늄 보드를 만들어 성경동화 그림들을 붙일 수 있게 했다. 자동차 배터리에 작은 앰프를 연결한 뒤 찬송 테이프를 틀며 부산 거제동과 연산동, 사직동 골목골목을 끌고 다녔다. 공터가 나오면 아이들과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어린이전도협회에서 구입한 성경그림으로 전도를 했다.

아이들이 늘어나자 앉고서고 해서 빽빽하게 270명까지 들어올 수 있던 2층 예배당도 더 이상 자리가 없었다. 아내가 맡은 미취학 유치부 아이들은 건물 아래 공터에서 80∼100명씩 따로 모였다. 몇 달 뒤에는 고등학생 형제들이 리어카 사역을 돕겠다고 나서더니 자기들이 직접 주일마다 네 군데 공터에서 야외 주일학교를 했다. 산상교회는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초등학생만 600∼900명이었고 중고생도 80∼120명에 달했다.

우리 부부는 2층 예배당 한쪽 아주 좁은 방에 살았다. 방이 너무 작아 어른 둘이 눕고 나면 큰아이는 누일 곳이 없어 옷걸이 밑에 재웠다. 공용화장실 입구에 베니어합판으로 칸막이를 해서 부엌으로 사용했다. 석유곤로 하나로 밥을 지어먹고 수도가 없어 물을 길어와야 했다. 그래도 복음으로 구원받고 찬송 부르며 성장해 가는 어린 영혼들을 보며 행복해했다. 

오후엔 일생을 목사로 헌신키로 한 다섯 명의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요한복음을 한 장씩 읽으며 성령께서 주신 감동들을 나눴다. 같이 라면 끓여 먹고, 김장을 하고 계단 아래 도르래로 우물물을 길어다 주는 충성스러운 형제들이었다. 그 형제들이 현재 침례신학대 신학대학원장으로 있는 이형원 박사와 침신대 교수인 정승태 박사, 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훈련원에서 사역하는 조광문 목사, 부산 복천교회 박금조 목사, 호주에 이어 미얀마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연규 선교사다. 송경희 정미숙 박선옥 김진향 서연희 사모 등은 내 아내를 충성스럽게 도와주던 여학생들이었다. 당시 산상교회 학생들 중에서 부산 십대선교회(YFC) 대표 임양조 목사를 비롯해 총 16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나왔다. 주님의 선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1978년 9월 5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마침 부산 반송성서침례교회가 문을 닫을 처지라며 한번 와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첫 설교를 했는데 총 11명이 모였다. 대지 132㎡(40평)에 예배당과 사택, 마당을 갖추고 있었다. 기도하고 기쁘게 옮겼다. 거제동 산상교회에서 낳은 첫째 사명이와 둘째 성찬이에 이어 이곳에서 막내 성진이를 낳았다.  

부산 달동네 판잣집에서 이주해온 3만명이 살던 이곳에서 나는 열정적으로 전도했다. 청년들은 날마다 영혼들을 데려와 구령 상담을 맡겼다. 때론 새벽 1시까지 하나님 말씀으로 구령 상담을 해 구원받는 역사들이 일어났다. 예배 때마다 성령이 충만했고 기쁨과 감격이 넘쳤다. 1년도 채 안 돼 출석 성도가 11명에서 110명으로 늘어났다. 레드먼 선교사 부부가 종종 찾아와 눈물을 흘리곤 했다. 

예배당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기려 계획하고 있는데 대전에서 전화가 왔다. 대전성서침례교회 후임을 놓고 내가 거론되고 있어 초청 설교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모르니 그곳이 열리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산연합신학대학원 졸업여행을 마치고 대전 가양동에 있는 교회로 갔다. 오전 예배에 31명이 출석했는데 ‘하나님의 동산에 심긴 백향목’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저녁에도 설교를 했다. 구원받은 사람과 헌신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왔다. 회의하는 동안 잠시 나가 있다 들어오라 하더니 박수로 맞이했다. 10·26사태 이틀 전인 1979년 10월 24일 작은 트럭에 짐을 싣고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6개(1/2페이지)
대외홍보자료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6 [역경의 열매] 김남주 (17·끝) ‘5者 철학’으로 영혼의 혁명 주심에 사진 김명순 4103 2015.07.21 09:49
25 [역경의 열매] 김남주 (16) 美서 설교·간증… 가는 곳마다 성도들 회 사진 김명순 3717 2015.07.21 09:48
24 [역경의 열매] 김남주 (15) 추수감사주일 헌물로 단 하나 뿐인 냉장고 사진 김명순 3564 2015.07.17 10:06
23 [역경의 열매] 김남주 (14) 재정 부족에 사례비 5000원에도 감사 사진 김명순 3664 2015.07.17 10:06
>> [역경의 열매] 김남주 (13) 믿음의 아내와 중고 TV 팔아 ‘복음 리 사진 김명순 3868 2015.07.17 10:05
21 [역경의 열매] 김남주 (12) “돈·실력·인물 없지만 제겐 하나님이 있 사진 김명순 3533 2015.07.17 10:05
20 [역경의 열매] 김남주 (11) 선교사들 軍 방문에 자극… 영어책 닳도록 사진 김명순 3332 2015.07.13 07:40
19 [역경의 열매] 김남주 (10) “나 군목인데, 김 일병이 급히 설교좀 사진 김명순 3780 2015.07.13 07:38
18 [역경의 열매] 김남주 (9) 돈 없어 하루 세끼 국수… 고학으로 신학교 사진 김명순 3860 2015.07.13 07:37
17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8) 돌아온 탕자, 통곡의 회 사진 김명순 3652 2015.07.08 11:27
16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7) 구주 영접 1966년 8 사진 김명순 4068 2015.07.08 11:26
15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5) 중학 시절도 ‘원생’ 꼬 사진 김명순 4445 2015.07.05 00:22
14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4) 고아원 악동들, 전교생 사진 김명순 3927 2015.07.05 00:20
13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3) 고아원 시절의 추억 ‘강 사진 김명순 3585 2015.07.01 10:25
12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2) 가산 탕진 아버지는 머슴 사진 김명순 3501 2015.07.01 10:23
11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남주 목사 (1) 고아원 소년, 오직 주님 사진 김명순 4058 2015.06.29 23:07
10 호매실 새벽성서침례교회, ‘사랑나눔’ 쌀 전달 사진 첨부파일 김명순 3996 2015.05.03 14:01
9 “근본믿음 한국을 넘어 세계로”… 성서침례교회 50주년 대회장 김우생 목 사진 첨부파일 김명순 3816 2015.05.03 14:00
8 [한국성서침례교회 50주년] “복음사역 반세기… 제2도약 이루자” 사진 첨부파일 김명순 3527 2015.05.03 13:59
7 [크리스챤 투데이] 성서침례교회, 제3회 PK 수련회 개최 사진 김명순 3627 2015.05.03 13:5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