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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신곡성서침례교회] ‘믿음 농사’는 스스로 짓는 거지-121109

김명순 | 2015.05.03 13:43 | 조회 2298


충남 홍성군 21번 국도에 들어서자 붉게 물든 야트막한 산 아래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촌락들이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을걷이를 마친 뒤라 거무스름한 속살을 드러낸 논에선 제법 찬바람이 이는 듯했다.

단풍나무에 가려져 있는 예배당 주변의 텃밭에는 배추와 무가 실한 결실을 맺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솟아 있는 빨갛게 녹슨 십자가, 신곡침례교회의 풍경은 이웃 시골집들과 멋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음이 멍든 주민들의 안식처 

“어서 오셨시유?” “아유 이리 좀 와봐유.” 

지난 1일 충남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 대정초등학교 앞에서 서종윤(50) 목사가 주민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전도지를 유심히 읽어보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교회에) 안 다녀유”라면서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신곡침례교회의 주요 전도 지역은 교회가 있는 구항면 신곡리를 비롯해 지정리, 대정리, 광천읍 벽계리 등 7개 마을이었다. 벼농사, 고추 재배, 육우 사육 등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주민 상당수는 불교신자이거나 무속신앙에 젖어 있었다. 

교회에 나오는 이들은 20여명뿐이었다. 적은 수지만 믿음의 깊이는 어느 도시 교회 못지않아 보였다. 특히 가족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을 앓게 되면서 맺힌 응어리를 혼자 감당하지 못해 예배당을 찾는 성도들이 적지 않았다. 마치 교회는 시골 어르신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작은 안식처와도 같았다.

천유두(81) 할머니가 대표적인 사례. 교회에서 2㎞쯤 떨어진 척괴마을에 사는 천 할머니는 5남매 중 둘째 아들이 지난해 위암으로 세상을 뜬 뒤 믿음을 갖게 됐다. 장례를 치른 뒤 허망한 마음에 한 발짝 움직이기도 어려웠는데 기도를 하면서부터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고 했다. 

“아들이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장례식에까지 오셔서 교회에 꼭 나오라고 권하셨는데 나는 ‘돈 없어서 못 다녀유’ 그냥 그랬어. 그랬는데도 목사님이 돈도 주시고 가시고 우렁차게 기도까지 해주시니까 속이 다 시원하고 맘이 아주 편안해졌어유.” 

허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한 천 할머니는 서 목사가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교회에 나온다. “허리가 다 주저앉았었어. 디스크라고 하는데 나이가 많고 다른 데 안 좋은 곳이 많아서 수술도 못해. 목사님이 우리 집 마당까지 날 데리러 오는데 너무 수고가 많으셔. 홍성에 있는 병원까지 데려다주고유.”

서울 신내동에서 살다가 3년 전쯤 친정인 대정리로 내려온 서인희(63) 권사는 남편을 잃고 우울증까지 앓았다. 서 권사의 남편은 10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서 권사는 몸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여러 차례 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다고 한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와서 길 가다가 막 쓰러지기까지 했어요. 누워서 살다시피 했어도 하나님한테 살려달라는 기도는 안 했어요. 그런데 막상 숨을 못 쉴 지경까지 되니까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해서 마늘, 콩 농사를 조금씩 짓고 살아요.”

남편이 먼저 떠난 것뿐 아니라 남매 중 둘째가 아프다는 사실도 늘 서 권사를 괴롭혔다. 그의 아들(38)은 중학생 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충격으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서 권사는 “경찰에 신고해서 폭행범을 잡고 보니 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동창이고 선배였다”며 “어렵게 사는 동네 애들인데 어떻게 처벌해달라고도 할 수 없었다”면서 눈물을 떨궜다. 

“아들을 끌어안고 이 병원 저 병원 돌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좋아지기는 어렵고 이 상태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니까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죠. 지금은 아들이 단순노동이라도 할 수 있고 건강도 많이 회복했으니까 이나마도 감사합니다.” 

서 권사의 기도제목은 아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교회에 나오게 해달라는 것. 그의 아들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집밖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 꺼려한다고 했다. 

22세 때 충남 보령에서 척괴마을로 시집 온 김춘식(69) 권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의 남편은 2010년 6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폐렴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바깥양반은 생전에 딱 한 번 교회에 나오셨어. 이제 막 교회 문을 열었는데 그렇게 돼 가지고 살려달라고 기도를 얼마나 했는데….” 

“핍박을 감내하면서 믿음을 지켰다”는 성도도 있다. 이영숙(56) 집사는 “재작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너무 무서워서 아기를 업고 몰래 몰래 교회에 다녔었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뭣 하러 믿느냐”면서 아내가 교회에 다니는 걸 반대했다고 한다. 이 집사는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때면 기독교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했다”면서 “이제는 남편이 하나님 나라에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이 집사는 “서울과 전남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들이 다 교회에 다녀야 할 텐데, 종교 문제로 부모 간에 다투는 걸 자주 봐서 그런지 자식들이 교회에 거부감을 느끼는 거 같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고향 교회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 



신곡침례교회는 1968년 미국인 안시 B 휘커 선교사가 개척했다. 서 목사는 7번째 담임목회자로 지난해 3월 부임했다. 

대전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던 서 목사는 고향 교회가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는 “교회 사정이 너무 어려우니까 부모님께서 내려오지 말라고 했었다”며 “나도 도시 교회에서 목회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고향 교회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릴 적 추억이 어려 있는 고향 교회가 문을 닫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는 것. 서 목사는 “14세 때 이 교회에서 처음으로 믿음을 갖게 됐다”며 “토요일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방네 전도를 다녔던 기억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했다. 

서 목사가 부임했을 당시 성도 수는 10명이 채 안 됐다. 서 목사 부부는 무작정 전도지를 들고 교회 인근 마을에서 주민들을 만났지만 분위기가 냉랭했다. 교회 재정도 열악했다. 이문호(52·여) 집사는 “예배당에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삐거덕하는 소리가 났고 겨울엔 스타킹을 신었는데도 너무 추웠다”면서 “전에 계시던 목사님은 드실 쌀이 떨어져서 힘들다고 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서 목사는 무조건 자주 마을 주민들을 찾아가는 것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또 교회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을 갖는 주민들을 전도하기 위해 조촐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 잔치를 열었다. 토요일 오후 성도 5명이 조를 이뤄 마을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대 활동’도 했다. 

특히 성경말씀을 한 번 듣고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르신 성도들을 위해 서 목사는 ‘시리즈 설교’를 도입했다. ‘회개란 무엇인가’ 등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여러 차례 설교를 반복하면서 어르신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서 목사의 진심이 통했는지 교회에 나오는 성도 수는 20여명으로 차츰 늘어났다. 성도 수가 증가한 데는 서 목사의 완벽한 충청도 사투리가 한몫했다. 서 목사는 “외지에서 엉뚱한 사람이 오면 적응하는 데만 몇 년 걸릴 정도로 텃세가 심하다”며 “여기 사투리를 잘 쓴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영미(46) 사모는 “처음에는 무서워서 전도 활동을 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였는데 어르신들을 자주 찾아뵙다보니까 이젠 저희를 기다리시는 분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곳저곳 금이 가 있던 예배당 마룻바닥은 지난해 8월 서울 한 교회의 자원봉사자들이 수리를 해줬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특히 교회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아 교회를 재건축하려고 해도 건축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아직 청소년 성도가 없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를 위해 서 목사는 교회 인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축구 교실 강사를 맡고 있다.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자연스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서 목사는 “성도들이 마늘 심는 일을 품앗이 해주고 고민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면 정말 흐뭇하다”면서 “장기적으로 100명의 성도들이 서로 의지하고 함께 예배를 보는 교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골이 열악하긴 하지만 굳은 믿음을 갖고 사역하다 보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곡침례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하면 2시간20분쯤 걸린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가다 홍성IC로 빠져나와 갈산교차로에서 홍성 방면으로 우회전해 29번 국도를 탄다. 마온터널을 지난 뒤 남부순환로 ‘홍성읍, 서천, 보령’ 방면으로 진입한다. 마온교차로에서 우회전, 21번 국도를 타고 4.7㎞쯤 가다가 좌회전하면 좌측에 교회가 보인다.

홍성=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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