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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는 인간, 선을 지우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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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봉호
댓글 0건 조회 2,809회 작성일 22-03-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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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을 긋는 인간, 선을 지우는 예수 *

 

인간은 선 긋는다. 선을 그어 놓고 내 편과 네 편을 나눈다. 선은 넘을 수도 없고 넘지도 못하는 마음의 경계이며 울타리다. 선을 긋는 것은 보호가 아니다. 단절과 폐쇄다. 외로움이다. 인간은 선을 긋고 그 안에 갇혀 살아간다. 더 넓은 것, 더 높은 것, 더 가치 있는 것, 더 큰 진리를 보지 못한다.

 

인간이 선을 긋는 이유 중 하나는 다름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다름(different)을 그름(wrong)으로 생각한다. 다름을 그름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선 때문이다. 선 안에 갇혀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은 비판을 낳는다. 비판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단절이나 다툼을 가져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인간이 그어 놓은 선을 지우기 위해서다.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인간이 둘로 나누어 놓은 선을 지우셨다. 십자가는 크로스(cross). 크로스는 교차가 가능하다. 선이 없으니 소통이 가능하다. 둘이 하나가 된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나가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그러니 평안하다.

 

성도는 선을 지우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우신 선을 자기 논리를 내세워 다시 긋고 있다. 자신은 선에 갇히고 예수님은 선 밖에 서 있게 한다. 성도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이 사회에 그어져 있는 다양한 선들을 지우는 사람이다.

 

선을 지우려면 지우개가 필요하다. 지우개는 사랑과 관용이다. 사랑은 사람 그 자체에 대한 태도다. 관용은 다름에 대한 방식이다. 팀 켈러는 관용은 신념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관용은 신념을 갖되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고 했다.

 

예수님이 자기 육체와 십자가로 선을 지우심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다시 선을 긋는 이유가 무엇인지? 쓸데없는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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