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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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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봉호
댓글 0건 조회 1,743회 작성일 22-05-0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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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고문은 없다.

 

유대교 랍비가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가 어느 날 탈출구를 발견하고는 꿈에 부푼다. 마침내 탈옥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나타난 종교재판소 소장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 운명적인 저녁의 매 순간이 다 예정된 고문(拷問)이었다. 희망이란 이름의 고문!” 19세기 프랑스 작가 빌리에 드릴라당이 쓴 희망고문이란 소설에 나오는 글이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 장교 짐 스톡데일은 8년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 극적으로 살아났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먼저 죽음에 이른 사람은 놀랍게도 비관론자가 아니었다. 성탄절에 풀려날 것이라고 믿었다가 크리스마스가 그냥 지나고, 그럼 부활절 때 풀려날 것이라고 다시 기대했는데 또 좌절을 맛보는 식으로 낙담을 거듭한 사람이 더 먼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막연한 희망에만 기대를 걸었다가 더 큰 실패를 초래하는 현상을 스톡데일의 이름을 따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희망의 역설이다.

 

희망의 역설 또는 희망 고문이란 절망적인 결과가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작은 희망으로 인해 오히려 더 괴롭게 되는 것을 일컫는 단어이다. 희망이 아예 없다면 깨끗하게 단념하겠는데 약간의 가능성 때문에 미련을 두고 어떻게든 절망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려는 인간의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단어다.

 

모든 일은 항상 성공과 실패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다만 희망고문은 좁은 의미로 따져보면 주로 성공의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이 훨씬 높은 상황을 의미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다면 성도에게도 희망 고문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 이유를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이면서 신학자인 자크 엘룰(Jacques Ellul)의 말에서 찾아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희망은 근본적으로 기만이다. 희망은 희망일뿐이고 결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희망과 소망은 구분 되어져야 한다.”

 

희망과 소망은 다르다. 희망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소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 우리가 아무리 확신한다 할지라도 확신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확신의 근거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 성경은 약속의 책이다. 인간의 약속이 아니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성품은 변함이 없다. 변함없으신 그분의 성품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도 변함이 없다. 따라서 성도에 희망고문은 없다. 성도는 희망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소망으로 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망이 되신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사람은 우리의 믿음을 희망고문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소망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우리가 굳게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소망이 현실이 되는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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