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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도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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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산성서침례교회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4-04-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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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도 함께해야 유리하다

 

최근, 페터 블레벤의 나무 수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나무와 숲의 다양한 생존방식을 통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책의 한 부분을 나눈다.

 

나무는 왜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동료들과, 나아가 적이 될 수도 있는 다른 개체들과 나누는 것일까? 이유는 인간 사회와 똑같다. 함께하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는 숲이 아니기에 그 지역만의 일정한 기후를 조성할 수 없고 비와 바람에 대책 없이 휘둘려야 한다. 하지만 함께하면 많은 나무가 모여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막으며 상당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습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이 유지되어야 나무들이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러자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개체가 자신만 생각한다면 고목이 될 때까지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나무가 몇 그루 안 될 것이다. 계속해서 옆에 살던 이웃이 죽어 나갈 것이고 숲에는 구멍이 뻥뻥 뚫릴 것이며 그 구멍을 통해 폭풍이 숲으로 밀고 들어와 다시 나무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또 여름의 더위가 숲 바닥까지 침투하여 숲을 말려 죽일 것이다. 그럼 모두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나무는 한 그루 한그루 전부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주어야 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자산이다. 따라서 병이든 개체가 있으면 지원을 해 주고 영양분을 공급하여 죽지 않게 보살펴야 한다. 지금 나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회복한 나무가 다음번에 내가 아플 때 나를 도와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은회색 아름드리 너도밤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코끼리 떼가 떠오른다. 코끼리들도 서로를 보살핀다. 아프거나 허약한 동료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고 심지어 죽은 동료조차 함부로 내버리지 않는다.”

위의 글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가복음 627절 이하의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6:27-31).”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고 축복하는 이유는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다. 그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다. 원수나 미운 사람을 다 제거하고 나면 이 세상에 남는 사람은 나 혼자다. 인간은 나 혼자 산다가 안된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이고 네트워크 존재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영향을 주거나 받아야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Give and Take’이다. 사회는 이런 원리로 순환하고 인간관계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Give and Take는 공존과 상생의 원리다. 심지어 대상이 원수이고 경쟁자라 할지라도 해야 한다.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성도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원수와 경쟁자에게도 give 했다. 동기가 사랑이든 공존의 동기이든 상관없다. 물론 돌아오는 것 즉 Take가 없을 수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하나님이 Take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도의 믿음이다.

 

인간은 따로 살 수 없다. 인간(人間)이란 단어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관계의 대상이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그래도 추운 겨울을 견디려면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 이것이 생존과 공존의 방식이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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