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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는 목사 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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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018회 작성일 12-03-0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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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은 한 주나 두 주에 한번씩 나와요. 물을 무척 아껴 씁니다. 가뭄 때에는 물 사정이 더 어렵고요"


 


정상섭 목사님(흑산면 수리교회)의 부인이며 동역자인 김정자 사모님의 말입니다. 마을에 작은 상수원이 있지만 작은 섬이라서 물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무척 아껴야 합니다. 대둔도에 들어온 지가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배멀미는 여전합니다. 은행원과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아왔던 육지사람이 섬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없지만 목회자의 아내로서 교회와 주민들을 섬기며 삽니다. 교인들의 일을 돕고 부인들 파마도 해준답니다. 짭짤하고 비릿한 바닷바람에 사모님 얼굴도 흑산도 피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친정어머니가 손자 첫 돌에 대둔도에 오던 날...


어머니는 미국 가는 것보다 더 멀고 힘들다며 어려워했습니다. 의정부에서 목포까지 내려와서 여객선으로 흑산도를 거쳐 대둔도까지 건너왔으니 그 시간이 비행기로 미국 가는 것보다 훨씬 더 걸린 것입니다.


 


정목사님은 그 때 예배당 건축을 하느라 아들 돌잔치에는 관심이 없고 현장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믿지 않는 장모님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날 밤에 정말로 미안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비가 내리는데 집 안에는 큰 비가 온 것입니다. 깨어진 지붕 틈새로 빗물이 쏟아져서 크고 작은 그릇을 다 동원해서 받쳐놓아야 했습니다.
 


딸을 섬으로 보내놓고 늘 마음 편치 않았을 친정 어머니가 모처럼 찾아 왔다가 어려운 생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입니다.


 


장모는 사위에게 "우리한테 예수 믿으라 하지 말게. 자네가 죄 많은 사람이네. 이런 데서 이렇게 고생을 하다니... 어서 육지로 나오소. 2층 교회라도 하면 내가 도와줌세...." 하고 말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고생, 깊은 섬에 들어가서 고생하는 목회자, 그리고 그 고생을 함께 하겠다고 세상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섬으로 들어간 딸, 불신자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고생을 하니 사실은 자네가 죄 많은 사람이 아니냐는 쓴 소리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영접하고, 손자 광복이를 데리고 살면서 고등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섬 목회 동역자요 좋은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수리교회 가족은 30명입니다. 장년 남자 3명에 여자 12명, 그리고 어린이 15명입니다. 어른 예배에는 열명 안팎으로 모이는 가족적인 교회,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합니다. 이 사람들이 남아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교회 개척 17년째 되던 해에 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교회가 큰 힘을 얻었습니다. 어른 교인이 40명이나 되었습니다. 예배당에 교인이 가득 차고 따뜻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예배당 옆에 문화관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잠시였습니다. 교인들이 다시 떠나고 여럿이 별세하면서 예배당이 썰렁해졌습니다. 기둥 같은 집사가 바다에 작업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은 지금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설립교인인 한글반 출신 한 분도 폐혈증으로 별세했습니다.
 


교인들을 하나씩 둘씩 계속 떠나 보내면서 정목사님은 속으로 슬피 울었답니다.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천국 가는 빠른 길이라면,,,"


그 때를 회상하는 정목사님의 표정은 잠잠해지고 숙연해집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한편으로 생각하니 남아있는 교인들이 고맙고 든든하더랍니다.
육지로 찾아갈 가족도 없고, 늙고 병들어서 고향을 떠날 수 없는 노인들, 남의 양식장에 일하는 가난한 사람들, 이곳에 내 뼈를 묻어야 할 곳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의 영혼이 다시 다가왔습니다.


'당신들이 알곡입니다. 당신들은 내게 맡겨진 주님의 양무리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한글반 부인 4명으로 교회를 시작하던 그 첫 사랑. 그 때의 소명과 기도를 회복하면서 제2의 개척을 다짐하고 일어섰습니다.
 


"아들아, 너는 목사 되지 마라."


어린 아들에게 백 번도 더 말했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들 광복이는 생각이 다릅니다.


"아버지가 존경스럽습니다. 나도 목사가 될 것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그 한마디에 지나간 날들의 모든 일에 위로 받고 큰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국 281개 섬 교회 가운데 7할 이상이 목회자 생활비도 부담할 수 없는 미자립 교회입니다. 수리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있으면 누군가는 가야 합니다. 바울이 이방인을 향해 실루기아에서 배를 탔던 것처럼 오늘도 가깝거나 먼 섬으로 가는 배를 타는 복음의 사자들의 발걸음은 아름답습니다. ( 독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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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면 대둔도에서 30년 가까이 목회하던 정삼섭 목사님이 1월 3일 전남대학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위암이 발견되었는데 상태가 중하고, 폐도 좋지않았습니다. 12월 초에 목포기독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시 일산 국립암센타로 갔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치료하라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한 주 전에 전남대학병원으로 내려왔습니다.


1월 2일,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면서 위중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밤 시간에 약간 호전된 상태로 병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목사님은 1월 3일 정오부터 숨이 가빠졌습니다. 사모님과 아들(현역 학사장교)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평안하게 운명하시도록...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정 목사님이 즐겨 불렀던 찬송이랍니다.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찬송을 들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답니다. 오후 1시 15분 소천. 하나님께서 불러가셨습니다. (기독공보)

 



 


대둔도 전경


 







운영자: 기독공보에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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